<사진출처: PYTAK, Scientific America>

오늘은 로봇에 관한 단상을 나눌까 합니다. 신동아 2009년 3월호 '미래학 이야기'를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머지 않아(2050년 이후) 우리의 아이들이 로봇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썰'을 풀어놓았죠. 2050년이 먼 것 같지만, 2009년에 태어난 아이가 갓 마흔을 넘긴 나이가 됩니다. 지금 우리의 자식, 손자가 목격하게 될, 사회는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든 로봇과 공존해야 하는, 이젠 우리가 로봇을 닮아가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앞서가는 양반들은 이 시대를 이끌어갈, 로봇에 밀리지 않을, 인간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대학을 세우고 있습니다. 예컨대, Ray Kurzweil과 Peter Diamendis가 함께 설립한 Singularity University,오는 5월 개교. 이 시대를 상상하고 있노라면 별의별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힙니다.  

각설하옵고,
저의 미천한 로봇에 관한 지식보다, 로봇 전문가인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의 미래예측을 소개합니다. 모라벡은 스탠포드에서 로봇으로 박사학위를 취득(80년대 초반)하고 줄곧 로봇의 미래만을 연구한 공학자이자, 미래학자입니다. 10살 때, 모라벡은 로봇 도마뱀, 거북이를 만들어 과학상을 수상한 적도 있는, 당돌하고 대담한 아이였습니다. 말로만 로봇의 미래를 떠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카네기멜론대에서 로봇을 연구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이론가이자 실행가입니다. 신뢰할만 합니다. 그가 최근 Scientific America에 글을 올렸습니다.
(모라벡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클릭-->http://www.frc.ri.cmu.edu/~hpm/hpm.cv.html

다음은 그가 주장하는 로봇의 미래, 세계의 미래 요약:  
(기사 원본은 여기-->www.sciam.com/article.cfm?id=rise-of-the-robots&page=7 

2010년 도마뱀 정도의 인지능력을 갖춘 로봇이 등장. 청소하고 물건 나르는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음. 30년 뒤인 2040년엔 인간의 지능을 갖춘 로봇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 이같은 낙관론의 근거는 다음의 네 가지.

1) (다 알다시피) 급격하게 빨라진 컴퓨터 정보처리속도: 예컨대, 1995년 컴퓨터 스스로 자동차 운전을 시작해 2007년엔 반나절을 스스로 운전함. 이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 사물을 인식하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능력이, 모든 생물체의 생존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랜 기간 동안 이 능력을 키우기위해 노력했음. 컴퓨터는 아직 이런 점에서 인간의 적수가 안되나 조만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임.

2) 인간의 뇌를 컴퓨터 칩으로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옴. 인간의 뇌가 곧 컴퓨터의 뇌가 되는 시대.

3) 분자생물학과 뇌과학의 발달: 생명과 마음의 작동원리를 규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로봇이 냄새 맡고 느낄 수 있으며, 말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될까. 지금까지 과학기술로는 벌레 정도의 감각은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 조만간 인간의 능력까지 진화될 수 있다. 냄새 맡는 능력으로 먹이를 찾는 개미, 페로몬을 추적해 짝을 찾는 나방처럼 지금의 로봇은 이정도는 한다. 예컨대 레이저로 물건의 바코드를 읽어 방향을 잡는 것을 봐라.

4) 인간의 신비는 뇌의 정보처리 속도, 망막의 정보 처리 속도 같은 것이었는데, 컴퓨터는 뇌의 정보처리능력을 초월하고 있다. 문제는 정보처리속도와 지각 능력, 감각 능력을 어떻게 연결하는냐 하는 것.

이런 기술의 발달을 통해 모라벡은 로봇이 인간화되는 4 단계를 제시합니다.

로봇 1.0 시대: 실수투성이 로봇. 뭘 해도 불안하다. (지금이 그렇다, 그러나...)
로봇 2.0 시대: 변화 적응이 목표. 잘한 것은 더 잘하고, 못한 것은 줄여가는 로봇 등장.
로봇 3.0 시대: 인간 직전 단계. 물리적 인지(형태를 알아보고), 문화적 이해(가치를 익히고), 심리적 감수성(인간이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고, 목표를 공요하는 능력) 등 3박자를 갖춘다. (누가? 로봇이! 그리하여...)
로봇4.0 시대: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단계. 아픈 것을 알고, 돈을 쓸 줄 알며, 계획을 스스로 만들 게 됨.

모라벡은 2050년 로봇이 자식을 보는 시대가 온다고 주장합니다. 그 자식이 로봇의 자식일지, 인간의 자식일지...그건 모르는 일이고요. 모라벡의 주장과 관련해 이런 의문이 듭니다. 그에 따르면, 마음은 지각하는데서 온다는 것인데. 예컨대, 인간이 오감(五感)이 없는 채 태어난다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는 주장이죠. 마음은 오감으로 생긴 욕망이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놈도 별 것 아닌 것 같아요.

로봇의 자식을 보는 시대, 로봇과 결혼하는 시대가 온다면, 기독교보다는 불교가 융성해질 것이란 주장이 있습니다. 불교는 모든 사물에 영혼, 의식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죠. 또, 기독교는 인간이 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반면, 불교는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 사회의 변화는, 종교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기독교의 쇠퇴로 막스베버식의 기독교적 자본주의는 막을 내리고, 다른 철학을 내재한 경제원리가 등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경제구조가 바뀌면 정치체제도 바뀝니다. 도덕은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누구에게 배울까요? 삶의 목표는 무엇이 될까요? 잠시 잊고 살았던 저 우주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사랑이란 뭘까요? 땅바닥에 뒹구는 돌도 사랑하게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일곱살 제 아들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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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빛 2009/03/28 07: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최근 급속도로 진행되어온 프로그램의 진화는 의도한 바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미래 로봇의 진화된 게놈을 위한 준비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쓰신 글을 보니 존 설의 중국어방 실험이 생각이 납니다. 만약 우리가
    지구라고 이름붙여진 아이팟만한 기기 속 65억개의 프로그램으로 담겨 있다고 해도
    스스로의 진정한 모습을 자각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로봇을 만들고 마음이 있다, 없다를 고민하는 것처럼 우리를 만든 존재도
    우리의 진정한 마음의 존재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함께 떠오릅니다.

    마음에 대한 탐구, 끊임없는 사고실험과 자기 수행이 숨쉬기 다음 정도의 위치로 가게
    될 날이 머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p.s. 종종 포스팅 해주시니 좋네요. ^^
    일곱살이면 아버지와 함께 세상의 이치도 토론할 수 있을 법 합니다. 부러워요.

    • 미래도둑 2009/04/04 07:54  address  modify / delete

      댓글이 좀 늦었어요. 한빛님 코멘트는 언제나 흥미롭군요.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날이 오길 바랍니다.

  2. 이안 2009/03/28 08: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좁은 일상의 테두리내에서 생각하고 있는 제게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시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3. Here 2009/04/10 16:4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인간이 오감(五感)이 없는 채 태어난다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는 주장이죠. 마음은 오감으로 생긴 욕망이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놈도 별 것 아닌 것 같아요."

    ->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윗글에 대해 스스로 동의하지 못하는 의견을 올립니다

    -> 겉으로 드러나는 자연 현상이 있고, 이를 보고 듣고 냄새맡고 접촉하는 등 오감이 있고, 느끼고 인지하고 반응하는 생각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일련의 오감을 통해 생각을 일으키는 작용의 근원적인 본성, 즉 마음이 있다는 모델을 가정해 봅니다. 여기서는 생각과 마음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마음은 오감과 무관하게 본질적인 존재 그 자체로 정의하고 오감을 통해 인지되는 현상에 대해 판단하고 반응하는 것을 생각이라고 구분 짓게 되면, 마음이란 오감의 존재여부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고 오감이 마음을 만들어 낸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본 글에서 표현하는 '마음'이란 단어를 '생각'이란 단어로 바꾸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외부의 현상이나 오감이 이전에 본성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이란 볼수도 느낄 수도 없을터인데, 대체 마음이 무엇인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등등의 의문이 여전히 남게 됩니다.

    오감(어쩌면 육감)으로 알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의 존재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 중 유용한 방안이 한가지 있지요

    우선 본질적인 존재(Being)과 그 존재로 부터 나타나는 속성을 구분해 봅니다. 여기서 존재로부터 속성이 나타나는 과정에서 적용되는 일반화된 법칙 또는 규칙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연/우주가 있고 그 속에 우리가 오감으로 인지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자연의법칙(또는 좁게는 물리법칙)이 있고 그 법칙을 탑구하는 과학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례로, 빛이 있지만 그 빛을 오감으로 보지는 못합니다, 다만 그 빛의 반사 속성을 통해 물질에 반사되는 색을 눈으로 봄으로써 그 빛의 존재를 미루어 짐작합니다. 여기서 빛은 본질적인 '존재'이고 물질에 반사된 색은 '속성'으로 구분할 수 있지요. 빛으로부터 반사되는 물질의 표면의 색이 나타나는 자연의 법칙이 존재하구요.

    또 다른 예로, 테두리가 없는 무한히 크고 넓은 거울을 생각해 봅니다. 만약에 어떤 물체를 그 거울에 반사시켜 눈으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 것이 거울이라고 알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여기서 거울은 존재하지만, 그 거울에 반사되는 물체의 상, 즉 거울의 속성을 보고서야 거울을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거울의 반사법칙이라는 물리법칙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지요.

    마음과 생각에 대해 다시 돌아가 보면, 마음은 본질적인 '존재' 이고 '생각'은 마음의 속성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생각은 오감에 대해 반응하면서 생길 수 있지만, 마음 그 자체는 오감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의 속성인 생각을 통해 마음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나 할까요?

  4. 2009/04/13 10: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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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4/13 13:5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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