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듣고 저에게도 한 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1995년인지 94년인지...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민주화언론운동연합(민언련)에 가입해 리영희, 강준만, 손석희 등의 강의를 듣고 다닐 때였습니다.
기금모금을 위해 맥주집을 한 곳 빌려 사회 인사들을 초청했는데,
노무현 의원이 촌부처럼 들어와 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맥주도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때론 심각하게 토론도 하고 그랬습니다.
뺀질한 정치인 같지 않은 소탈한 풍모에,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진지한 태도는,
1일 호프집에서 일했던 저같은 대학생의 눈엔 '선비'처럼 비쳤죠.
그후 세월은 흘러 2002년 대선을 취재하는 기자로 광화문 프레스센터에 들어가다가,
노무현 대선후보와 마주쳤습니다.
정몽준 후보와 경선 끝에 단일화에 성공한 직후여서,
이미 노무현은 촌부 노무현은 아니었습니다.
386국회의원 두명이 보좌하고, 경호원도 있었습니다.
반갑게 악수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싱그러웠고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보기에 좋았습니다.
대통령 자리가 버거웠을까요?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던 걸까요?
그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은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대통령 임기 내 많은 일이 있었죠. 지지층도 바뀌고, 이탈자도 많았습니다.
비난하는 사람은 많았고, 칭찬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의 공과를 평가하자면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야하겠지만,
도덕성만큼은 언제 평가해도 자신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을 겁니다.
현재 검찰 조사 중이고,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불러온 불법자금 문제는,
노무현 정권을 떠받치는 큰 기둥 '도덕성'을 갉아먹는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에 관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고, 그에게 아낌없이 한 표를 던졌던 시민으로서,
저는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에 있는 그의 자살을 두고는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자살도 대안일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오로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그의 고뇌를 생각하면, 더더욱 가슴이 답답합니다.
요즘 이어지는 자살 행렬을 보고 있노라면, 대안이 없는 우리사회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것 같습니다.
저는 미래학을 공부하면서 한가지 문제만은 풀자고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어느날, 어느 모임에서 한 중년의 여성이 저에게 한 질문 때문입니다.
"미래학을 공부하신다죠? 그런데 미래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아세요? 답변을 기대하지는 않겠어요..."
저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고,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제가 선택할 미래는 없어요. 싫어도 따라가야할 미래만 있을뿐..."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안이 없는 사회...대안을 불허하는 사회...이른바 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영국의 철혈재상 마가렛 대처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사회를 전쟁사회로 규정하고,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로 믿었던 대처의 슬로건은,
곧 미국의 슬로건이었고, 대한민국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저는 대안이 없다는 말을 가장 폭력적인 말로 간주합니다.
설령 지금 당장 대안이 없더라도, 이런 말은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인사들이 이따위 말을 뱉어내는 사회라면, 그건 시쳇말로 '막장' 사회인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내몰리거나 죽음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외국에 살면서 '유가폭등'은 견뎌낼 수 있습디다. 자동차 안 타고 그냥 걸어다니면 되니까요.
때론 불편하지만, 저에겐 걸을 수 있는 다리도 있고, 정 불편하면 중고 자전거도 한 대 사면 되니까요.
그러나 환율의 폭등, 폭락만큼은 견디기 힘듭니다. 대안이 없어섭니다. 개인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 대안이 없는 상황은...지옥입니다. 자괴감을 부추깁니다. 꿈을 접게 합니다.
사회지도층의 인사라면, 한 사회가 막다른 길로 달리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아니, 한 사회에 막다른 길밖에 없음을 이야기해서도, 그걸 몸으로 보여줘서도 안 됩니다.
대안이 없다고 믿는 사회에서 대안이 있음을 보여줬던 노무현 전 의원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대안이 없다고 믿는 사회에 한 숟갈 보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선 침묵하려고 합니다.
1995년인지 94년인지...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민주화언론운동연합(민언련)에 가입해 리영희, 강준만, 손석희 등의 강의를 듣고 다닐 때였습니다.
기금모금을 위해 맥주집을 한 곳 빌려 사회 인사들을 초청했는데,
노무현 의원이 촌부처럼 들어와 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맥주도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때론 심각하게 토론도 하고 그랬습니다.
뺀질한 정치인 같지 않은 소탈한 풍모에,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진지한 태도는,
1일 호프집에서 일했던 저같은 대학생의 눈엔 '선비'처럼 비쳤죠.
그후 세월은 흘러 2002년 대선을 취재하는 기자로 광화문 프레스센터에 들어가다가,
노무현 대선후보와 마주쳤습니다.
정몽준 후보와 경선 끝에 단일화에 성공한 직후여서,
이미 노무현은 촌부 노무현은 아니었습니다.
386국회의원 두명이 보좌하고, 경호원도 있었습니다.
반갑게 악수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싱그러웠고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보기에 좋았습니다.
대통령 자리가 버거웠을까요?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던 걸까요?
그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은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대통령 임기 내 많은 일이 있었죠. 지지층도 바뀌고, 이탈자도 많았습니다.
비난하는 사람은 많았고, 칭찬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의 공과를 평가하자면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야하겠지만,
도덕성만큼은 언제 평가해도 자신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을 겁니다.
현재 검찰 조사 중이고,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불러온 불법자금 문제는,
노무현 정권을 떠받치는 큰 기둥 '도덕성'을 갉아먹는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에 관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고, 그에게 아낌없이 한 표를 던졌던 시민으로서,
저는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에 있는 그의 자살을 두고는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자살도 대안일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오로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그의 고뇌를 생각하면, 더더욱 가슴이 답답합니다.
요즘 이어지는 자살 행렬을 보고 있노라면, 대안이 없는 우리사회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것 같습니다.
저는 미래학을 공부하면서 한가지 문제만은 풀자고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어느날, 어느 모임에서 한 중년의 여성이 저에게 한 질문 때문입니다.
"미래학을 공부하신다죠? 그런데 미래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아세요? 답변을 기대하지는 않겠어요..."
저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고,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제가 선택할 미래는 없어요. 싫어도 따라가야할 미래만 있을뿐..."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안이 없는 사회...대안을 불허하는 사회...이른바 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영국의 철혈재상 마가렛 대처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사회를 전쟁사회로 규정하고,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로 믿었던 대처의 슬로건은,
곧 미국의 슬로건이었고, 대한민국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저는 대안이 없다는 말을 가장 폭력적인 말로 간주합니다.
설령 지금 당장 대안이 없더라도, 이런 말은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인사들이 이따위 말을 뱉어내는 사회라면, 그건 시쳇말로 '막장' 사회인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내몰리거나 죽음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외국에 살면서 '유가폭등'은 견뎌낼 수 있습디다. 자동차 안 타고 그냥 걸어다니면 되니까요.
때론 불편하지만, 저에겐 걸을 수 있는 다리도 있고, 정 불편하면 중고 자전거도 한 대 사면 되니까요.
그러나 환율의 폭등, 폭락만큼은 견디기 힘듭니다. 대안이 없어섭니다. 개인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 대안이 없는 상황은...지옥입니다. 자괴감을 부추깁니다. 꿈을 접게 합니다.
사회지도층의 인사라면, 한 사회가 막다른 길로 달리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아니, 한 사회에 막다른 길밖에 없음을 이야기해서도, 그걸 몸으로 보여줘서도 안 됩니다.
대안이 없다고 믿는 사회에서 대안이 있음을 보여줬던 노무현 전 의원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대안이 없다고 믿는 사회에 한 숟갈 보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선 침묵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