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훔친 사람들-1

전에 강남구청장을 역임했던 권문용씨를 혹, 아시는 분이 있을까요?

올해 초엔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적도 있었지요.

강남에 친환경 모노레일을 깔겠다고 해서 언론에 잠깐, 얼굴을 비치기도 했던...그.

오늘은 그분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아울러,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미래를 앞서간 사람들의 '노하우'를 취재해, 함 써보겠습니다.


얼마 전, 권 선생님(지금은 야인이 되셨으니, 호칭은 그냥 선생님으로)을 파이낸스빌딩 지하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일로 만났지만, 중요한 그리고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셔서, 저는 그 얘기에 푹 빠졌죠. 이른바,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

권 선생님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경기고 동창으로 그를 '한국 최고의 예측 전문가'로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권 선생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그는 故 김재익(아웅산 테러 때 순직) 청와대 경제수석을 도와 경제정책을 입안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냈던 아이디어를 꼽으라면, 기계식 전화기를 전자식 전화기로 바꾼 것, 없어질 뻔한 광양제철소 건립 계획을 추진했던 것, 원자력발전소를 건립키로 한 것 등입니다.

혹,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펴낸 김재익 수석에 관한 책을 읽으신 분이 있다면, 전자식 전화기로 바꾼 당시의 결정에 대해 좀 아실 겁니다. 지금 한국이 IT강국이 된 것은, 혜안을 갖춘 25년 전 관료들 때문이라는 것을.
광양제철소 건립은 지금의 철 수요를 생각하면, 너무 잘 한 결정이었는데. 당시 반대의견을 주장한 사람들은 곧 제철산업이 포화돼 광양제철소가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권선생은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철 수요가 늘 것으로 예측, 밀어붙인 것이죠.

여기서, 당시 사용했던 미래예측 기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보다 앞선 국가에서 어떤 산업이 번창하고, 사라지는지 살펴보고 그걸 우리 실정에 응용하는 겁니다. 너무 간단해서 싱겁죠? 예컨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불을 넘어서면 와인 산업이 번창하고, 2만불을 넘어서면 요트 산업이 번창하고...이런 식이죠.

사실, 그와 점심을 먹으면서 들은 얘기 중 귀가 솔깃했던 것은 그가 강남구청장으로 재직했을 때 얘깁니다.

그는 강남구청장을 12년이나 했던 분입니다. 3선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주민들이 그를 신뢰했다는 것인데, 주민의 마음을 귀신같이 들여다볼 수 있던 비결이 있습니다. 그는 이를 AHP(Analytical Hierarchy Process)라고 부릅디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그가 강남구청장 재직 시절, 정부의 강남 때리기가 한창이었죠. 강남에 집수요가 몰리는 것은 교육환경 때문이다, 따라서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겠다는 이슈가 제기됐다고 합니다. 이를 반박한 논리로 강남구는 '8학군은 과거에도 있었다, 강남구청이 주민의 마음을 잘 읽어 살기 편하게 됐고, 그래서 집값이 오른 것이다'라는 것을 내세우기로 했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우선 인터넷을 통해 강남구청이 실시했으면 좋을 정책 리스트를 나열했습니다. 그중, 85%의 찬성률을 보인 것이 인터넷 수능방송이었답니다. 강남구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문가 풀을 구성해 인터넷 수능방송을 해야 할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우선 전문가들에게 인터넷 수능방송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응답자의 70%가 교육기회균등을 답했고, 20%가 이웃과 공유의 혜택을 그리고 나머지 10%는 교육혁명에 기여한다는 것을 꼽았답니다.

세 가지 효과, 교육기회균등, 이웃과 공유, 교육혁명를 전문가에게 다시 제시한 뒤, '그렇다' '아니다'라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교육기회균등에 긍정하는 포션이 60%, 이웃과 공유에 15% 그리고 교육혁명에 7%가 '그렇다'고 했답니다. 결과적으로 전문가들은 82%가 인터넷 수능방송을 하자는 의견을 보인 거죠.



결론적으로 주민찬성 85%와 전문가 찬성 82%는 엇비슷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주민과 전문가가 비슷한 비중으로 찬성하는 정책을 그는 밀고 나갔습니다.

그의 방법에 핵심은 정책의 혜택들에 적정한 웨이트를 주는 겁니다. 강남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칩시다. 그럼, 세가지 정도의 카테고리를 만듭니다. 도시균형발전, 경제성, 미래도시상 등. 이 세 가지의 웨이트를 이렇게 줘 봅시다. 도시균형발전에 70%, 경제성에 20%, 미래도시상에 10%. 이렇게 되면, 강남에 아파트를 짓는 것은 도시균형발전에 저해되므로 10% 이상의 점수를 받기 힘듭니다. 결국, 강남에 아파트 짓는 계획은 물 건너가는 거죠. 노무현 정부, 강남의 재개발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은, 이렇게 웨이트를 준 결괍니다.

권 선생에 따르면, 정책담당자의 철학에 따라 웨이트에 변화를 줄 수 있지만, 여기서 나온 결과가 주민이 원하는 것인지 확인하지 않은 것이 노무현 정부의 실책이라고 합니다. 그가 했던 것처럼, 주민의 의견과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 빠진 것이죠.

아, 오늘은 얘기가 너무 무겁지 않았나 싶은데요. 우린 늘 선택하면서 살 잖아요. 우리가 선택할 때, 과연 합리적인 기준이 있는가...하는 의문이 따를 때가 있어요. 이럴 때, 그의 방법을 응용하면, 좀더 합리적인, 미래 실현가능한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때문에 장문의 글을 올립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Posted by ohnul

2006/10/31 15:32 2006/10/31 15:32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www.ohnul.com/rss/response/82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List

  1. hojai 2006/10/31 20:47 # M/D Reply Permalink

    그러고 보면, 전 김재익 경제수석이란 분은 참으로 굉장한 분이군요. 저도 그분에 대한 신화를 여러 사람으로 부터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결국 80년대 한국 사회를 설계했던 사람이라는 건데......한번 제대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함께 책 한권 쓰시지 않으시겠습니까?

  2. feedforward 2006/10/31 22:44 # M/D Reply Permalink

    이스트 아시아 편집인께서 시간이 있으신지요?

  3. Lane 2006/11/01 08:59 # M/D Reply Permalink

    결국 그 웨이트를 결정 짓는 것이 결국 또 어려운 과제로 남는거군요.... (-_-)ㅋ

  4. feedforward 2006/11/01 10:45 # M/D Reply Permalink

    권선생도 적절한 웨이트를 잡는데만 20년이 걸렸다는군요.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69 : 170 : 171 : 172 : 173 : 174 : 175 : 176 : 177 : ... 231 : Next »

블로그 이미지

Human Indicator, It's my job!

- ohnul

Notices

Archives

Authors

  1. ohnul

Calendar

«   2010/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188445
Today:
49
Yesterday: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