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를 '가끔' 방문해주시는 '싸이렌님'이 방명록에 남긴 곽재구의 시 한 편입니다.
저도 한 때는 시 좀 읽었는데...근데 요즘 시가 땡깁니다. 최근엔 안도현 시인이 엮은 '그 풍경을 이제 사랑하려 하네'라는 시집 한 권을 샀는데,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곽 시인의 '사평역에서' 함 감상 해볼까요?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부신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말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길을 적시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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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ne 2006/11/21 09:1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언젠가 부터 이런 시를 봐도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질 못하고, 저 문장은 무슨 뜻일까, 저 단어는 무슨의미를 담고 있을까하는 시를 분석하려는 생각부터 먼저 떠오르네요.
    확실히 우리나라 교육은 썩었어요... (-_-)ㅋ

  2. feedforward 2006/11/21 16:0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ㅋㅎㅎㅎ 레인님, 일단 어느 부분이 분석의 필요를 느끼셨는지,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3. susanna 2006/11/21 19: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런 시는 밖에 송이눈이 쌓일 때 읽어야 제맛인데....어이하여 아직도 길거리의 나무들은 눈꽃은 커녕 단풍을 매달고 있는 것입니까!!!

  4. feedforward 2006/11/21 20:2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앗, 듣고보니 분배의 실패입니당. 월간지 기자의 비애...지금 1월호 제작중이거든요.